시란 무엇인가 - 샘문학 워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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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 - 샘문학 워크샵

장지연 0 1,796 2019.08.05 03:53

SAEM NEWS

 

우주적 관점에서 시란 무엇인가?
 
       - 샘문 총재 서창원
        
시는 누구에게나 우리 주변에
아무 예고도 없이 아름답게 존재해 있다
외롭다는 것,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아온다는
변화의 모습으로부터 느끼는
계절의 감각, 달이 뜨는 저녁에
멀리 어떤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경우와 같이

모든 우리 일상생활의 모습 안에
내재하여 있는 것이 시,이다. 

이처럼 시는 우리 생화의 내면을 받치고 있다. 
시라는 이아름다움은 우리의 흥과도
맥이 통한다. 흥얼대는 기분은
내면적으로 어떤 감흥의 아름다운
율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 자체의 세계가 곧 시라는
넓고 깊은 세계를 펼쳐놓은 것이다. 
그 은닉해 있을 것이

우리 일상의 생활하는 모습이다. 
인간은 이처럼 고도의 문화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무엇인가 발견하고
만들어 내며 그 유용성을 찾는다.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제품, 설치물, 도구, 집, 우주선 등
많은 물건과 용품을 만들어 낸다. 
이는 왜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가. 
인간은 생활의 편리성을 위해서이다. 

그러면 우리 정신세계를
유용화 하려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 소재는 무엇인가. 
정신적으로 영양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은 밥을 먹고 육체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러면 정신적으로는 어떤 영양을
섭취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 
정신적인 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이다. 
이 시는 그만큼 우리의 정신세계를
아름답고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는 공기와 물과 같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매우 필요한 양식으로서 제공된다. 
이는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나타났으며
시도 진화하여 현금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어떤 규약이나
규범 내재율 따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시도 이제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속박을 통해서 정률의 시가 존재하지만, 
이제는 넓은 의미의 시는
자유의 날개를 달고 있어야 한다.
 
인간이 이제는 달나라에 다녀 왔다. 
그곳의 계수나무와 토끼는 없다. 
그런데도 아직 인간은 달을
아무것도 없으나 달을 허무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 원초적인 힘이 곧 시를 창조하는
인간의 본태 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시는 진실에서도 그 진실을 부추기지 않는다. 
오로지 있다는 것 뿐이다. 
진실은 있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는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믿어주는 것이다. 
믿음의 원본으로서 시는 창작된다. 
시는 인간이 찾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보석 중의 하나이다. 
금은보석은 땅에서 찾으나
시의 보석은 마음에서 찾는 것이다. 
마음은 인간의 존재하는 우주이며
이 우주로부터 인간은 생활의 지혜를
얻고 이를 이용한다.
 
콜린스는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지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내가 첫번째 행성(지구)을

정말로 이해한 것은

두번째 행성(달)을 보고 난 이후이다. 

달은 너무도 상처가 많고 황량했다. 
그 혹독한 지표를 떠올릴 때마다
아름다운 행성 지구와 이 지구가 제공하는

무한한 다양성을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내 마음을 우주로 보내
꼬마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지구가 어둠에 둘러싸인 채
저 무자비한 햇빛 속에서 천천히 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세상의 정치지도자들이 20만㎞ 밖에서
이 행성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관점도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국경은 보이지 않고

시끄럽던 논쟁도 순식간에 잦아들 것이다. 
이 작은 공은 돌고 돌면서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콜린스의 “달로 가는 길” 저서 중)
 
詩 1.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경험적인 관계
만물과 소통의 관계

詩 2.
심혼의 맥
심연의 상과 연상

詩 3.
초월(超越/ Trensendense)적인 관계
양자(兩者)적 관계
추상을 구체화하는 과정
이미지의 생성

詩 4.
냇물 속의 나무 그림자를 비치며 물이 흐른다(관찰)
물은 모든 것을 지우고 보낼 수 있다(통념)
냇물이 그림자를 그대로 둔다
(의문과 새로운 관찰)
물이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다
(심미적 관찰, 시인의 역할)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의문의 제기, 메타포어라는 가상의 현실포착)
 
우리 인간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물을 구별하며 다르게 본다. 
달에서 암스트롱이 바라본 지구는

불과 20만km이지만

지구는 주먹만 한 크기의 하나의 별일 뿐이다. 


이 지구에는 75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러므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 지구는 손 주먹만 한 크기다. 
이 크기 안에 과연 75억 명의 인구가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달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반짝이는
별일 뿐이다. 
달에서 지구의 존재는 그렇다. 


우리 인간은 이처럼 미지의 세계는
늘 별에 불과하다. 
그 별을 내심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그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시적 세계는 바로 우리의 마음이며
별과 같이 반짝인다. 


이를 초월(超越 Trensendense)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시인이다. 
시는 무한이라는 우주에서 반짝이는
항성체의 내적 관찰의 결과물이다.
 
우주라는 먼 곳 그 끝은
우리 인간이 계산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끝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는
그 끝을 소유치 않아도 우리는 결과적으로
그 끝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함축이라는 시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혼은 우리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소유하고 창조하는 우주이기 때문이다.
 
T S 엘리엇의 시에서처럼 
“탐험이 끝날 때면 언제나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이르고, 

처음으로 그곳이 어디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상상일 뿐이다. 
그 상상은 진실이라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달에서 지구가 하나의 공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므로

우주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들어갔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이다. 
신성불가침이라는 달에 침입은 과연
무모한 것일까?
유용한 것일까?
왜 인간은 그러한 무모한 탐험을 하려는가? 
경험을 얻기 위한 것이며 알려는 것이다. 
인간은 나와 모든 것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알려고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알려는 본능이 창조의 에너지이며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학의 소산이기도 하다.

 

 

<SAEM NEWS>

 

발행인 이정록 회장

취재본부장 오연복 기자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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