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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121.♡.209.38) 작성일20-09-25 23:24 조회9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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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M NEWS》

 

노숙자

                                                         이정록

소매 바깥으로 내민 손이
예전에 팬대를 잡은 듯 가지런하니 
두 손을 모아 내민 손이 세월이 묵어보이니
쾌나 노출이 길어보이는 노숙이었을 것이다

구걸을 위해 내밀어 보이는 맨손이
부패한 세상에 오래 노출되어서인지
땟국물이 흐른다
더께 낀 맨손이 행인들이 동전을 얹어주자
이미 숙련된 사유인듯 타고난 사유인듯
코브라 먹이를 잡아 채듯이
지폐는 주머니로 동전은 깡통으로
분리 소화된다

저렇게 잽싼 속도로 시간도 공간도
생각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살을 섞고 헤어지는 것도 저렇게 잽싸게 분리했을 것이다
늘 맨손이었을 것이다
이별 하고 길을 잃은 기러기가
먼 산을 바라보다 헛디딘 슬픔을
품속에 묻고 혹독한 삭풍을 견디었듯이
맨손을 소매속에 묻고
노숙의 비애를 견디었으리라

밤새도록 훌쩍이던 삼양라면 박스집이
출근하는 발자국 소리에 자명으로 울릴 때
익숙한 맨손으로 인심을 호소하러
길목을 지키려 나섰을 것이다
낮달이 하루를 살아내고 사선을 넘어가면
하루를 거둬들인 맨손이
꼬랑내 풍기는 박스집으로 돌아와서
빵봉지 던지면 서럽게 주린 것들이
포만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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